2000년~20014년 정현철의 걷고 또 걸으며 사랑했던,태화강, 무거천 그 시절의 흘러간 이야기들 모음  
 아래 사진과 글은 ~1014년 2월까지의 나의 이야기다. 2014년 이후엔 학교를 퇴직하면서 추억의 이야기는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 영원히 기억될 나의 젊은 날의 이야기들..머잖아 움직일 수 없을 때 요양원에서 이 사진들을 보며 그리워 하겠지
       
추억은 언제나 그립다.

 經師易求
人師難得

 

 

 

 

 

 

 

                걷고 또 걷고                    정현철세계여행의정  

  나는 시내(市內)를 이동(移動)할 때 걷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마지막 정년퇴직(停年退職) 학교에서 5년 동안 왕복(往復) 12Km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每日) 걸어다녔다.
    버스를 타면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 환승해야하고, 또 젊은 사람들이나 학생들이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아도 자리를 양보(讓步)하지 않고 모른 척 눈을 감거나 외면(고교, 대학 시절 버스나 기차를 타면 나는 좌석(座席)에 앉는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恒常) 당연히 어르신이나, 노약자(老弱者)에게 양보(讓步)를 해 왔기에 말이다)을 하는 것이 정말 보기 싫었고 마음이 아파 걸으면 그런 것을 볼 수 없어 좋았다. 또 버스 냄새, 시큼한 버스 속 실내 공기를 맡지 않고 강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볼을 스치는 그 감미(甘美)로움이 좋았다.
  승용차(乘用車)를 타면 연료(燃料)도 많이 들고, 공기를 오염(汚染)시키니 내가 공기오염(空氣汚染)시키는 것 그것도 싫었다. 사람들은 로타리나 골목에서는 서로 차 머리를 내밀어 서로 먼저 가려고 삿대질 하고 싸우고 질서(秩序)가 엉망인 모습에 가슴이 답답하고 정말 싫었는데 걸어 다니면 그런 추한 것을 보지 않아서 좋았다. 정년퇴직(停年退職)을 하여도 여전히 걷는다.  오늘도 걷는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내가 눈을 감거나 걸을 수 없는 날, 그날이 오는 그 때 까지 여전히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아래 사진과 걷는 풍경은 2014년 2월까지의 그림이다.
 그 이후로는
정년퇴직을 했으니 이 강변을 걸을 일은 없다.
  지금도 아스라히 걷고 또 걷던 출근, 퇴근시간이 그립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먼 추억 속의 저편 강변을 걷고 또 걷고---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富)와 명예(名譽), 교육을 받음의 차이(差異)는 서로 각기 있을지 몰라도. 병들고 아파하는 고통(苦痛)과 죽음앞에서는 그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일 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현명(賢明)하며 이 진리(眞理)를 단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JUNG-HYUNCHUL.......

 子曰,知之者는不如好之者요,好之者는不如樂之者니라(공자가 말하기를 도를 알기만 하는 자는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신의와 성실로 잘될 때 교만하지 말며 못될 때 좌절하지 말자, 과욕은 금물이며 베풂은 보답이 따르는 법, 작은 것에 감사하고 실속없는 사치와 허영은 버리고 자기 분수에 맞춰살며 때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조상들의 어려웠던 생활과 비교도 해보자. 어떤 것이 행복인지 되돌아 보자,남을 돕는다는 것은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고 그저 베푸는 것이어야 한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삶이어야한다

 사람들은 승용차를 타고 버스를 타지만 나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경우에도 버스를 잘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버스비를 아낀다. 사람들은 돈을 모으면 구두를 사고 화장품을 사지만 나는 그 돈을 모아 인터넷서버를 구축하거나 여행경비로 사용한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니 대단한 것 처럼 오해를 한다.하지만 나는 사실 보잘 것 없고, 그저 볼 폼없는 사람일 뿐이다.
  한 끼의 식사로 냄비그릇에 김치 한 가지나 고추장 한가지만 담아, 비벼 방에 들고 밥 그릇 비움에 그저 감사한다.
여행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남을 도우는 마음을 키우며 욕심을 버린다. 여행중, 배우고 느낀 것을 책에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 새털처럼 많은 그 행복했던 이야기가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야 할 뚜렷한 이유이기에 고맙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에 오늘도 가슴이 벅차다  또한 내가 한국인이기.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하고픈 말은 아래와 같다.........

Spain Barcelona International Airport

  외국(外國)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늘~ Hyundai나 SAMSUNG. LG상품(商品)인 우리의 상품을 사라고 약속(約束)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 韓國商品(한국상품의 우수성(優秀性)과 장점(長點)을 메모해 가, 빠짐없이 그들에게 우리 상품의 우수성을 설득(說得)시킨다.    NISSAN이나 TOYOTA 일제(日製)차(車)를 가지고 있던 그들도 내 말을 듣고 다음 번에는 꼭 HYUNDAI나 KIA차를 사겠다고 흔쾌히 수락(受諾)받으며 또 서로 친분(親分)을 맺고 친구가 된다

 

      내가 수 많은 외국인들.  그들을 만나고, 또 만나며 만날 때 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은........Hyundai나 SAMSUNG. LG상품(商品)인 우리의 상품을 사라고 약속(約束)을 받는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우리 한국인들은 당신나라 사람들을 많이 사랑한다고 꼭 전해달라...

정현철 걸어서 세계 베낭여행              

 

 

 

 

  무거천을 지나가다 만난 무거농협 직원들이 청소 봉사활동하고 있기에 함께 청소를 한 후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무거천의 5월풍경........계절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길을 나는 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이 길을 걷고 또 걸어간다. 이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

  (태극기 gif는 .http://cafe.daum.net/wabsu에서 빌려왔다) 그리고 Digital-Camera는 SAMSUNG Logo가 새겨진 Cmera를 보여준다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게 자랑스럽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위의 배너누르면 나오는 내여행(旅行)이야기에 내가 자세히 기록해 두었기에 이 곳에서는 생략(省略)한다   (스페인 Barocelona 編 參考)

 
 The Korean flag was adopted on March 6, 1883. The flag contains a white field with a red and blue taegeuk (“yin-yang”). On each of the corners of the flag there are four black trigrams. The white on the flag represent the “cleanliness of the people”. The taegeuk symbolizes everything in the universe with the “Yin” (the negative) is blue and the “yang” (positive) with both in perfect balance. The four trigrams stand for the four Chinese philosophical ideas in regards to the universe of harmony, symmetry, balance and circulation.
   
아래 오른쪽 아리랑 음악 출처...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549

왼쪽 동영상의 음악
우리의 정서

ARIRANG '아리랑의 기적'

아리랑 음악들으려면 표를 클릭

  내가 일본에 대해 더 많은 적개심을 가진 이유는,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것 들과 대마도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것 뿐 만은 아니었다. 우리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고 느끼면서부터이다. 1543년 일본 種子島(타네가시마 だねかしま)에  표류한 포르투칼 상인에 의해 일몬으로 전래된 조총에 의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水吉)는 막부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 하고는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왜에게 잡혀갔던 강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히데요시가 말하기를 매해(每年) 조선(朝鮮)으로 출병(出兵)하여 조선사람을 모조리 죽여 빈 땅으로 만든 다음, 서로 사람(일본의 서부(西部)지방(地方)에 거주(居住)하는 주민(住民)-큐슈지방)을 조선(朝鮮)에 이주(移住)시키고, 동로사람(동쪽 지방에 거주하는 일본 사람-혼슈지방)을 거주시키려 했다, 조선(朝鮮)을 아예말살시키려는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계획(計劃)이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그 후 일제치하 강점기를 거쳐 1945년 광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만서.....1592년 임란 발발하면서 왜군은 닥치는대로 조선인들을 죽였던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세계(世界) 4대해전 윤지강著 한산대첩(大捷)편 참고(參考)-충무공 이순신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임진란이나 정유재란에대해 일제치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과연 오늘 우리 한국사람이 그 때의 일본책략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 대부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우리 나라, 우리 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확고한 이유이다

  어디 멀리 가서도 울산이란 단어만 보아도 눈물이 '핑~' 돌고 그립고 보고싶은 도시!....우리 울산!..이 울산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래서 울산과 늘 함께 하고 싶어서 2009년이후 나는 오전 오후  거의 매일 걷고 또 걷는다.
오전 7시20분부터 오전 8시35분 사이오후 5시부터 오후 6시10분 사이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그런 날이면 버스를 탄다)을 제외하고 왠만하면 걷는다. 그 시간에 나는 언제나 이 길을 걷고 또 걷고 있다.    거리는 대략 7Km 정도로 왕복 14Km 거리일 것으로 추산한다.
  나는 나 자신(自身)과 약속(約束)을 하였다. 여느 사람들 처럼 자가용(自家用)을 몰고 다니면서 자동차(自動車) 매연(煤煙)을 만들지 않을 것이며, 환경(環境)에 해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또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에게 해(害)하는 것들이나 )깨어진 병이 있으면 조금 시간이 지체되고 귀찮아도. 분리수거(分離收去) 하는 곳을 찾아 버릴 것이며, 우리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힘이 들고 어려운 사람이 눈에 뜨이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걸을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감사(感謝)하는 마음으로 죽는 그날까지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시지 않은 것을 나에게만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심에 또 감사(感謝)한다. 산을 넘으면 푸른 소나무 숲이 있어 감사(感謝)하고 이렇게 깨끗한 강을 볼 수 있고, 풀과 꽃을 보게해 주셔서 感謝하다. 그래서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언제나 감사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이렇게 걸을 수 있고 다른이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행복(幸福)할 것만 같다.
울산광역시 박맹우시장과 함께 한 시간. 찰칵!(박맹우시장님은 내 친구의 친구라서 나와 친구가 되어 그것도 참 감사하다)

 아파트 놀이터 (출발07:20) (도착 18:10)

  아파트 밖 풍경 (18:08)- 여름, 겨울풍경

  아파트 뒷산 초입

   집에서 출발하여 문을 나서면 바로 태화산에 진입한다. 소나무가 작은 산길을 따라 양 길에 서 있다.

무거천을 지나가다 만난 무거농협 직원들이 청소 봉사활동하고 있기에 함께 청소를 한 후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무거천의 5월풍경........계절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길을 나는 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이 길을 걷고 또 걸어간다. 이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

④-1태화산 고개위에 봄이 와서 목련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무거천과 버들 가지 봄소식 눈꽃이 피어나는 태화강 3월

   지도는 혹시나 이 글을 보게 될 사람을 위해 걷기를 권장하며, 번호와 사진을 함께 연결하여 올렸다.
 
 태화산(山)-명정천(川)-태화강(江)-삼호교(橋)-무거천(川) ...
   하나같이 아름답고 이쁜 풀들이 꽃들이 반겨주는 걷는 길이 냇가와 강. 그리고 산을 넘다보니 정이 듬뿍들었다.
      
④-2 태화산 고개의 -눈 덮인 겨울의 정상가는 고갯길
   매일 이 고개를 두 번 오르내리며..
.나뭇잎 하나, 풀 한 줄기,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이쁘고 앙징스럽고 귀엽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갈 때에는 1시간 5분 정도 소요되는데,  돌아올 때에는 놀면서 이것 저것 구경하다 모면, 꽃 향기를 맡다가, 풀을 어루만져주다가 두시간 반이나 걸리는 때도 있다

 태화강의 봄 풍경  ↑  게다가 걷다보면 가게의 물건도 구경하고 먹거리도 구경한다
문제는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다.
 우산이 없어 가게 처마밑에 큰 비 그칠 때 까지 기다리는데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도 이쁘고 비로 젖은 거리의 모습도 보기좋아 한참 그 모들을 바라보다 보면 비가 그칠 때도 있었다.     

   이 아래에도 지도참조하고. 오른쪽 사진의 분홍색은 매일 아침 걸어서 출근하는 길, 두껍고 짙은 보라색은 오후에 걸어서 집에가는 길, 오후 시간이 아침시간 보다 30분 가량 더 소요된다(아침 시간은 1시간 15분 정도, 오후 시간은 2시간 가량 소요된다)

포르투칼에서 나를 Spain, GIBRALTAR 해협strait을 건너 태워주었던 주었던, 포르투칼人 Bus Driver Carlos, 그는 영어를 조금 하고 포르투칼 말로해서 나는
알아듣기가 난해(難解)  했다

 2014년 2월 정년 퇴직 후 2016년 7월 현재까지 걷고 있는 길
- 언제까지 계속 될 지는 모르지만
 걸을 수만 있다면 끝까지 걷고 싶다

 ① 출발-우리집
 ②일요일 교회가는 날
 ③목요일 OB축구하는 날|
 ④ 수요일 그라운드 골프 |
 ⑤ 무거동 wpark

태화산 고개-정상가는 길

태화산 넘어의 관음사 10월

-1고개넘어 관음길 가을이 되는 날 10월

  태화산 고개를 넘으면 바로 관음사 절이 나오고 연이어 고갯길과 태화동 남쪽편으로 길이 나 있다

⑥-2 고개넘어 관음길 입구의 겨울풍경

⑦-1 관음사입구 6월 여름풍경

⑦-2 동부아파트뒷문

⑦-1 관음사입구의 여름 풍경

 

 내 나라, 우리 조국 우리 太極旗..외국에 나가면 눈물이 나도록 사랑스럽고 그리운 우리 태극기.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음을 가슴에 새긴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파랑)과 양 (陽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 : 음 --, 양 -)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가운데 건괘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는 땅을,감괘는 달과 물 을, 이괘는 해와 불을 상징하며, 각각 정의, 풍요, 생명력, 지혜를 뜻 한다.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박영효님의 뜻에 고마움을 새긴다.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에 의해 국기(國旗)로 제정했지만, 처음 태극기가 만들어진 것은 127년 전 조선 고종 19년인 1882년으로, 태극기를 만든 사람은 오랫동안 갑신정변의 주역 중 한 명인 박영효(朴泳孝·1861~ 1939) 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이유는. 일본에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파견됐던 박영효가 메이지마루(明治丸)선상에서 그려 1882년 9월 25일(이하 양력) 일본 숙소에 게양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1809년 일본에서 만든 일본의 고지도를 참고해 보면... 
국력이 약하면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다. 가장 증명하기 좋은 예로 위의 지도처럼 일본의 모든 古 지도에는 독도가 조선땅. 동해가 조선해(한국海)라고 자기들이 주장하면서도 한일합방(1910년)을 하면서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며서 바다도, 섬도 일본 것이라고 주장해 버렸다

 ⑦ -3 학성여중 건널목

 ⑦ -4  명정천

⑦ -5  명정천

⑧-1 태화축구장

⑧-2 태화축구장 눈위로 걸어가며 2011년 겨울

⑧-3 태화축구장 겨울 눈이 덮어있다

⑧-4태화 우리구장을 지나며 2011년 봄

⑧-5사진찍은 순간 골인되고 있다

⑧-5 이 곳 축구장에서 (매주 화.목요일)

⑧-6 태화축구장과 강변

그 강변에 눈이 쌓이고

2009년 9월27일 일요일. 내가 평소에 매일 걷는 길을 달렸던 아름다운 울산 태화강 십리대밭과 태화강변의 마라톤 하프코스(21.0975Km)지도

 

 아침일찍 지나가다가 매일 공을 차는 아침조기회 팀과 공도 차기도 하고..........

  태화강의 동강마라톤을 하는 배경사진

태화강 따라 달리던 마라톤 대회에서(태화강둔치)

⑨-1강물에 물고기들이 펄쩍 뛰고 있다

   태화강물이 맑고 깨끗하다. 강바람도 시원하지만 강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첨벙 거리는 소리에 한 동안 넋을 잃는다. 태화강가인조축구장에서 매주 화요일(FCEST)와 목요일(울산중구FCOB) 내가 소속된 축구팀에서 경기를 한다, 초록 인조구장에 서 있을 때  부드러운 바람이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감미로운 태화강 바람을 맞으며 드리볼 하다 우리팀에게 패스하는 그 기분은 해 본 사람은 잘 알겠지.......

⑨-2같은 위치 가을과 겨울 태화강 뚝길 산책로

 ⑨-3 태화강 뚝길의 가을풍경

  2009년 11월6일 태화강 신삼호교와 태화강의 모습. 강에는 백로가 물고기를 잡아먹기위해 기다래며 강에는 잉어, 연어가 수백수천마리가 떼지어 헤엄쳐 다닌다.
   한 곳만 이렇게 물고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온 강이 물고기로 가득차 있다,
  울산의 태화강..세느강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직접보고온 세느강과 태화강을 비교해 볼 때 세느강은 태화강에 비교가 안된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태화강은 파리의 세느강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반 고기반..이럴 때 쓰는 말일게다

 

 

태화강의 연어 2010年 11月03日()

 

 

 

  우연히 오늘 아침(11월3일 수)에는 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가게 된다.
   역시 여느날 처럼 가방을 메고 걸으며 出勤을 하면서 태화강을 건너는데 市廳에서 나온 사람이 연어를 잡아서위쪽으로 放流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昨年에 치어를 放流한 연어 새끼가 자라서 이제 알을 낳으려 먼 北太平洋에서 예 까지 헤엄쳐 오는데 잉어, 붕어, 가물치, 銀魚 등과 함께 망 위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연어 알이나 새끼를 다 잡아 먹는다고 망을 쳐 놓았다가, 연어만 잡아서 망 위로 올리는 作業을 하고 있었다
  이 場面을 놓칠수 없고, 또 全國사람들에게 태화강물이 얼마나 깨끗해 졌는가를 이 場面으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셔터를 급하게 눌렀다.
   그물 망 위로는 어미 연어만 올라가 알을 낳고 다시 치어가 자라서강 河口로 내려가 바다로 가서 來年에 다시 올라오겠지? 昨年에 700여 마리의 연어 어미가 와서 孵化했다고 하는데 올해는 더 많이 올라와 하루 終日 연어 어미 건져 올리느라고 힘이 들었다는 이 분의 말씀이었다.
 올해는 더 많이 잡혀서 또 부화시켜 내년에는 더 많이 올라오는 맑고 더 깨끗한 강이 되었으면 좋겠다. 종종 이 곳을 지나다 보면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낚시 밥을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많이 상한다. 우리 모두의 아름답고 이쁜 태화강인데도 말이다..........
나는 차 타기를 억제하지만 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최대한 環境을 破壞하지 않는다면 차를  運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로 들어 밧데리 하나만 봐도 그렇다.   
 아침 햇살 속의 맑은 태화강에 연어가 올라오고 있는 장면을 기념으로 찍어 보았다  ←

  초고용량축전기-Ultracapacitor(超高用量蓄電器)-전기의 도체(導體)에 많은 전기량(電氣量)을 축적 시키는 장치(라이텐병,가변 축전기 등),콘덴서)가 앞으로 상용화 된다면 말이다.
  이 Ultracapacitor(超高用量蓄電器)는 밧데리 분야에서도 가장 유망한

⑩-1삼호교아래천연기념백로

⑩-2삼호교 다리를 건너며

 

그린 비즈니스사업으로 이제 시작이지만 앞으로 엄청난 성장(成長)  가능성(可能性)을 가진 자동차밧데리로 운행하는 차가 나온다면 나도 차를 마음대로 運行할 수있고 얼마나 좋을까? Ultracapacitor(超高用量蓄電器)는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을 때 소모되는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충전해 자동차가 재출발하거나 가속 때 활용하는 것으로 이런 회생제동(回生制動-Regenerative Braking)으로 차의 연료(燃料) 소비(消耗)를 획기적(劃期的)으로 줄일 수 있다면 지금처럼 환경오염(環境汚染)도 훨씬 덜 하게 될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런 날 환경오염이 되지 않는 자동차를 타고 얼마든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을 것이다.
   ←  ⑪-2삼호교 08:18  (17:17)   

⑩-4 구 삼호교 다리를 건너며..

⑩-5 구 삼호교서 바라본 신 삼호교

⑩-6구삼호교 다리를 건너와 뒤 돌아보며

⑩-7 구 삼호교와 신 삼호교에 대한 설명판, 삼호교건너편에 있다

나는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곳을 두 번 아침과 오후에 걸어서 지나고 있다-무거천에 겨울에는 눈이 덮여있고 봄에는 꽃과 잔디로 덮여있다

    그리고 기존(旣存) 밧데리는 2천회 정도 충방전을 하면 수명이 다하지만 Ultracapacitor는 충전(充電)횟수가 50만번으로 거의 반 영구적(永久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가솔린을 사용하여 환경오염시키고 지구온난화에 한 몫을 하기에 수소자동차(水素自動車)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⑪-5삼호교에서 본 국수봉,옥녀봉

⑪-3 삼호교에서 본 국수봉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척과(尺果) 반용의 국수봉(國守奉)이다.
  중간 아래에 내가 사는 마을인 척과가 옥녀봉(玉女奉)과 國守奉 사이에 있다. 운무(雲霧)에 쌓여 있는 國守奉을 바라보다 걷고 또 걷는다. 무거천의 냇물이 수정(水晶)처럼 맑고 깨끗하다. 냇물따라 걸으며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게 하기위해 애 쓴 시장(市長), 구청장(區廳長)이나 관계자(關係者)들께 고마운 마음도 가지면서 걷는다. 산업화(産業化) 공업화(工業化)로 얼마나 태화강이 오염(汚染)되었던가? 그런데 지금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물로 바뀌기 까지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진땀을 흘렀을까?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

⑫-1 무거천   2009년8월풍경

-2 무거천 웰츠타워입구

⑫-3 디딤돌을 밟고 지나가는게 재미있다

 2010년 7월의 무거천에 장마가 들어 물이 길을 넘쳐 흐른다

 2010. 3

-벚꽃이 하루 하루가 다르게 피어난다. 위와 아래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의 봄, 그리고 겨울...너무 아름다워 걸을 때마다 행복 하다.

-4,5.6.7.8.9.10 모두 같은 장소이다. 계절이 여름, 가을, 겨울, 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10년 4월의 풍경

⑫-11눈내린 무거천의 겨울 풍경........2009년 12월의 풍경

 2011. 2월의 풍경

⑫-12 앙금질하면서 건너기도 하고

⑫-13 무거천 다리 아래 오리

-14 무거천을 따라 계속 걷는다

 어릴적 시냇가를 생각하게 하는 무거천..때때로 오리가 물을 헤엄치고 노는 모습에 걸어가다가 정신이 팔렸다가 나중에 정신없이 뛰어가곤 한다

-15 무거천 다리아래의 오리도 귀엽지만, 무심한 강아지도 이쁘다..걷다보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따라 오기도 하고...미국 프로야구 선수가 한국에 와서 현대 야구단에 입단하여 아침산책길에서 자꾸 만난다.  이웃에 사는데 아침마다 걸으면 만난다. 하루가 다르게 한국말을 배워간다. 어저께는 '안녕하세요?' 라는 말도 배워 나에게 말을 던진다. 벚꽃맞이 한마당 축제 준비중인 무거천(가운데 사진)

신복로타리 건널목

학교 뒷문

  아침 출근길에 매일 만나는 옥현초등학교 친구들...길을 걷다가 친구가 되었다. 겨울에 만나더니 봄에도 여름에도 만난다. 아침마다 이쁘게 인사하는 꼬마친구들이 참 귀엽다. 언제나 건강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아이로 튼튼하게 자라거라..우리 친구들아...2010. 07.12

 벌써 가을이 되었다. 길가 단풍이..걸은지 2년이되어간다. 내가 걷는 길 중 유일하게 가장 차가 많은 문수구장가는 도로,2010.11.03 수요일

벚꽃이 한창인 무거천과 같은 장소로 겨울에 눈이 내리고 있는 무거천의 다른 모습

 

현관 입구 08:35  (17:00)

 겨울의 현관입구에는 눈이 내리고..

 2010년11월03일 또 한해의 가을이 지나간다

 지난 날. 퇴직 하기 전까지 걷고 또 걸었던 그 길이다. 이제는 먼 옛 날의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걷고 또 걷던 그 추억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서 숨쉬고 살아 있을 것이다. 걸을 수 없는 그 날이 올 때 까지 걷고 또 걷고.........나의 희망이다.

바다는 中國보다 3배나 큰 日本

 

 

 

 

  강대국(强大國)의 '영토(領土) 식욕(食慾)'은 왕성(旺盛)하고 거침없는 점에 대해서는 신문(新聞)에 나와 있는 조선일보(朝鮮日報)의 박정훈 사회정책(社會政策)부장(副長)님의 말을 굳이 인용(引用)하지 않아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은 남의 나라 코앞의 섬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 만큼 욕심(慾心)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고 전한다.
  중국이 센카쿠열도 갖고 일본을 비난(非難)하지만, 중국이라고 나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중국 역시 필리핀·베트남 앞바다의 난사(南沙)군도(群島)까지 내려가 자기 땅이라 시비(是非) 걸고, 제주도(濟州道) 남쪽 이어도에도 눈독 들이고 있다.
   일찌감치 바다 영토에 눈을 뜬 일본은 상상을 초월(超越)하는 '바다 부자(富者)'다.
  땅 덩어리(세계(世界) 60위)는 좁지만, 경제(經濟)주권(主權)을 쥔 해양(海洋)(배타적(排他的) 경제수역(經濟水域)·EEZ) 크기에서 일본은 세계 6위에 올라 있으니까... 중국·인도(印度)보다도 3~4배 큰 바다를 지배(支配)하며 해양대국으로 떵떵거리고 있는 것이다.
   
실감(實感)나지 않는다면 해양(海洋)지도(地圖)를 펴보라. 태평양(太平洋) 서북쪽의 광활한 바다가 온통 일본 수역(水域)으로 색칠된 것을 보고 충격(衝擊)받을지 모른다. 그 상당 부분이 19세기 말~20세기 초 일제(日帝)의 팽창(膨脹)노선(路線)과 관련(關聯) 있다.
   다른 나라가 국제법(國際法)에 무지(無知)하던 시절, 이곳저곳 무인도(無人島)를 찾아다니며 깃발을 꽂아놓은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의 바다 영토(領土)는 부자연(不自然)스러울 정도로 부푼 모습을 하게 됐다.
  
서쪽 끝은 대만(臺灣) 턱밑에 다가서 있고, 남쪽은 필리핀 앞, 동쪽으로는 태평양(太平洋) 중턱까지 뻗어 있다. 일본 바다 영토의 동·서 간 직선(直線)거리(距離)는 3140㎞에 달한다. 경도(經度)로는 33도, 시차(時差)로 계산하면 2시간 이상 차이(差異) 나는 거대(巨大)한 영역(領域)이다. 동쪽 끝인 미나미토리섬은 도쿄에서 1800㎞ 떨어진 괌 근처(近處) 태평양에 있다. 망망대해(茫茫大海) 한가운데에 상암월드컵경기장 크기(1.5㎢)만한 섬 하나가 달랑 떠있는 모양새다.
  흥미(興味)로운 것은 섬의 주소지(住所地)다.
일본은 군용기(軍用機)로 5시간(時間) 걸리는 이 외딴 섬의 행정구역(行政區域)을 '도쿄도(都)'에 편입(編入)시켜 놓았다.
  
 지도(地圖)로 표기(標記)된 일본의 바다..망망대해(茫茫大海) 한가운데에 상암 월드컵경기장 크기(1.5㎢)만한 섬 하나 떠있는데 그로 인해 바다 넓이는 우리 나라 바다 전체 넓이보다 더 넓다

  상주(常住) 주민도 없지만, 수도(首都)로 간주해 지키겠다는 강렬(强烈)한 의지표현(表現)인 셈이다. 남쪽 끝 오키노토리섬의 주소 역시 '도쿄도'로 시작된다. 이 섬의 최고봉(最高峰)(?)은 해발(海拔) 15㎝이고, 물 위로 나온 면적(面積)은 10㎡에 불과하다.
  더블베드 사이즈의 '암초급(級)'이지만, 이곳을 지키려는 일본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행여나 바다에 잠길까 4000억원을 쏟아부어 방파제(防波堤)를 쌓더니, 티타늄 합금(合金)의 금망(金網)까지 씌워 덮었다. 덕분에 일본은 이 섬 주변(周邊) 200해리의 EEZ 40만㎢를 확보(確保)하게 됐다. 더블베드 크기 섬 하나만으로도 한국(韓國)의 EEZ(약 30만㎢)를 다 합친 것보다 넓다.
  이렇게 태평양 서북쪽을 온통 자기 바다로 만든 일본이, 동해(東海)로 건너와 독도(獨島)마저 내놓으라 윽박지르고 있다.
  생각할수록 이승만 대통령(大統領)의 '무모(無謀)했던' 독도 선점(先占)이 고맙다.
  별 힘도 없던 그때 '평화선(平和線)'을 선언(宣言)(1952년)하고, 군대(軍隊)를 보내 일본 선박(船舶)을 내쫓지 않았다면 독도의 운명(運命)은 어찌 됐을까. 상상(想像)조차 하기 싫다는 조선일보 박정훈 사회정책(社會政策)부장님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일본이 섬이라고 주장(主張)하는 이 오키노도리섬(沖の鳥島)은 약 3평 크기의 작은 암초(暗礁)로, 만조(滿潮) 때는 바닷물에 의해 잠기는 이 암초(暗礁)]를 섬이라 주장함으로써 주변(周邊)해역(海域) 200해리를 배타적(排他的) 경제수역(經濟水域)(EEZ)로 설정(設定)g하였다.
  
일본 본토보다 넓은 40만 평방킬로미터의 바다영토를 일본영토라 우기며 오키노도리섬을 섬으로 인정(認定)하지 않는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
   일본은 수몰위기에 놓은 오키노도리섬을 보존하기위해 1988년에 콘크리트로 꼭대기부분을 높이 3M, 반경 25M로 넓혀 놓았지만 사람의 인위적인 손이 닿은 콘크리트 인공 섬이 자연 섬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산호를 양식해 오키노도리섬 주변에 키움으로써 섬의 수몰을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


  1910년 한일(韓日) 합방(合邦)을 하면서 독도(獨島)를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더 확고(確固)히 하면서 일본땅이라고 고집한다.
  대마도(對馬島)가 조선(朝鮮)의 땅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言及)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키노토리시마(沖ノ 鳥島 항공사진)
  산호초(珊瑚礁)로 되어 있다. 16세기(世紀)경 스페인 선박(船舶)이 발견(發見)했고 1920년 일본이 측량(測量) 조사하였다고 한다.

  울산蔚山!!. 이 아름다운 울산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나의 고향은 울산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울산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한국을 사랑하듯이 내가 울산에서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 수년동안 이 곳에 살면서 아름답게 변해져 가는 그 모습과. 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을 뜨겁게 해서  더욱 울산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스마트그리드 첫삽 제주 구좌읍(사용량 알아서 조절전기자동차 타고 출근…2013년 완공)
  
집 안에 부착된 ‘스마트 계량기’는 수시로 전기사용량과 전기요금 정보를 수집해 그에게 알려줄 것이다. 이렇게 친 환경을 위한 시설은 지구온난화를 드디게 만들어 준다.
  이 곳의 전기요금은 수요와 공급량에 따라 시간대별로 달라진다고하는데.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똑똑한’ 계량기가 전해준 전기요금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시간 및 사용량을 스스로 조절한다고 한다.
 회사로 출근할 때는 전기자동차를 이용하며. 집과 회사를 잇는 길가엔 전기충전소와 배터리 교환소가 여러 군데에 설치돼 있을 것이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실증단지 안에 사는 까닭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水素自動車(수소자동차)는 가솔린 대신에 수소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 인데 水素를 燃料로 하기 때문에 물론 排氣가스의 주성분(主成分)은 물이다
. 원리( 原)理는 물을 전기분해(電氣分解) 하면 수소와 酸素가 發生하는데 이때 電氣라는 에너지를 주어서 高純度의 가스상태로 만들어 발생하는 열에너지와 膨脹壓力을 利用하여 엔진기관을 구동하게 구동 시키는 것이다.
  
水素연료(燃料)전지(電池)自動車의 경우에는 이와 달리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서 전기를 생산하여 전기를 動力으로 하는 전기자동차(電氣自動車)이다... 즉 수소연로전지자동차(水素燃料電池自動車)는 엔진이 아닌 전지(電池)를 이용한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이다. 이 때문에 배기가스가 없는 건 당연하다. 어서 이런 자동차가 나와 환경(環境)을 오염(汚染)시키지 않아 마음놓고 자동차를 운행(運行) 할 수 있는 그 날 나도 차를 마음껏 운행하고 싶고 또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려 진다

  수소연료전지 진영에서는 “전기차의 배터리가 유해물질이고 충전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들어 차세대 차량으로는 수소연료전지차가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수소연료전지차는 흔히 알려진 ‘전기차’에서 배터리 대신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한 차량으로 일반 ‘전기차’는 충전하는데는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8시간까지 걸리지만 수소연료전지차는 5분만에 수소를 가득 채울 수 있우며, 효율도 뛰어나 한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750㎞가 넘어(기아 모하비 수소연료차) 배터리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먼 거리를 달릴 수 있고, 수소 연료의 가격도 같은 거리를 달리는 전기료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우월한 기술이라고 한다.  최근 인사이트 등 하이브리드로 인기높은 혼다 또한 양산형 수소연료전지차 FCX를 내놓고 미국과 일본 등에서 리스 형태로 판매하고 있는데 아놀드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수소연료전지 허머(Hummer)를 타고 다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 측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효율이 우수해 차세대 자동차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매년 1100억원 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기아 모하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경우 미국 대륙을 대부분 횡단하고 미쉐린이 주최한 세계 대회도 완주하는 등 수소연료전지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다만 수소충전소를 전국적으로 설치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백금 촉매 등 수소연료전지 관련 부품의 가격이 아직 높다는 점이 장애물이다.


  (서울대 物理天文學) 임지순 교수(그림 구조도 참고) 연구팀은 水素를 固體 상태에서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 構造를 발견했는데. 이 硏究結果는 物理學 分野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피지컬 리뷰레터' 에 게재됐으며 수소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티타늄 원자가 부착된 폴리아세틸렌 주위에 수소가 다량 저장된 모습. B는 티타늄 원자가 부착된 폴리아닐린 주위에 수소가 다량 저장된 모습이다

 목적지 도착하니 신종(新種)플루가 유행(流行)한다고 아이들 귀에 체온계(體溫計)를 재고 있다. 열(熱)이 37도 5부를 넘으면 신종인플루엔자를 의심한다. 이렇게 변종(變種)인플루엔자가 유행(流行)하는 것도 지구(地球) 온난화(溫暖化)가 원인(原因)인데 자동차(自動車) 배기(排氣)가스의 이산화탄소(二酸化炭素)가 주범(主犯)이다.(겨울이 따뜻해지니 각종 곤충이 겨울을 나면서 곤충속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이 죽질 않고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각종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한다)
  
우리가 변종(變種)바이러스에서 해방(解放)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타지 않거나 훗날 나올 水素自動車(수소자동차)나 수소연료전지자동차(水素燃料電池自動車)를 타면 된다. 이산화탄소(二酸化炭素)의 배출(輩出)을 막아 지구(地球)온난화(溫暖化)를 더디게 만드는 것 뿐이다, 걸으면 건강(健康)에 좋고 지구환경(環境)에 도움이 되며 경제적(經濟的)으로도 윤택(潤澤)해 진다. 그런 마음을 갖게 해 준 것도 고맙고 감사(感謝)하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午後에 오늘 아침에 걸었던 그 길을 다시 되돌아 걸어 갈 것이다.

  인플루엔자 Influenza-환절기(換節期) 및 겨울철에(대개 11월∼3월) 유행하는 유행성독감流行性毒感(인플루엔자)은 감기와는 달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전염병(傳染病)으로 증상(症狀)이 아주 심하고 전염성이 강하여 단 시일 내에 유행하는 병이다.
  임상적(臨床的)으로 다른 호흡기(呼吸器) 바이러스 질환(疾)患과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확한 발생 수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유행하면 인구의 10∼20%가 감염되며 변이(變移)가 심한 바이러스가 유행(流行)하면 감염자(感染者)가 더 늘어 40%에 달하기도 하는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신종(新種)플루니 사스니 하는 신종(新種), 변종(變種)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새롭게 계속(繼續) 나타날 것이다. 어쩌면 미처 백신을 개발하기도 이전에 새로운 변종이 계속...이 모든 것은 자동차(自動車) 배기(排氣)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 때문이다.
   인간(人間)의 종말(終末)은 의약품(醫藥品)으로도 치료(治療)할 수 없는 변종(變種)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나타나 이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의학자(醫學者)들은 추측(推測)하고 우려하기도 한다.
  시간(時間)이 흐르면 이 말들이 증명(證明)될까 너무 너무 두렵다-징후(徵候)-
 울산(蔚山)의 태화강이 말해주고 있다.
-①지난 수백년 수천년 동안에서 1960년도까지 태화강은 겨울에 꽁꽁얼어 붙었고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수레나 리어커로 얼음위를 운반(運搬)하기도 하고 걷기도 했다
-②그러나 1990년도의 태화강의 겨울은 조금 두껍게 얼었지만 사람이 설 수는 없었다,
-③2000년도의 태화강의 겨울은 살얼음이 조금 얼었다가 녹아 버렸다
-④2007년이후부터는 태화강의 겨울엔 살얼음조차 얼지 않고 겨울에도 얼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후는 어떤 기후(氣候)로 변하여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미래(未來)는 30년 50년 후의 이 곳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참고: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가까이 그리고 한 낮의 기온이 영하로 사흘정도 지속되면 강이 얼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겨울은 영하 10도이하로 사흘이상 떨어지지 않는 다는 뜻이다. 아니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의미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모든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며 배기(排氣)가스를 마구 내 뿜으며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에 한 몫을 할 지라도 나 만은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며 나로 인해 단 1초라도 지구의 종말을 더 견딜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고맙고 감사(感謝)할 뿐이다.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來日도 모레도.....여전히 나는 걸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未來)는 불확실(不確實)하다.
 
그 미래(未來)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현재(現在)를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나 하나만이라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지키며 살아야 한다.
  경고(警告)를 결코 무시(無視)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사랑하는 아이의 미래(未來)를 아름답게 해 줄 책임(責任)과 의무(義務)가 바로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  ---끝---

  우리 울산중구는  2007년 현재 울산광역시의 중심부에 있는 구. 면적 36.97㎢. 인구 23만 4386(2003)으로 태화강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중요한 문화재로서는 태화사지12지신상부도 (太和寺址十二支像浮屠 보물 제441호), 울산 병영성 (蔚山兵營城 사적 제320호)이 있고, 시도 유형문화재는 울산동헌 및 내아 (蔚山東軒및內衙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울산향교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7호)·효자 송도선생 정려비(孝子宋滔先生旌閭碑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10호)가 있습니다. 또한 기념물로 다운동 고분군 (茶雲洞古墳群 울산시 기념물 제11호)·전(傳) 수운 최제우유허지(傳水雲崔濟愚遺虛址 울산시 기념물 제12호), 금속장(金屬匠) 임원중씨(울산시 무형문화재 제1호)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울산왜성(蔚山倭城 문화재자료 제7호)·유곡동 공룡발자국화석 (裕谷洞恐龍足印化石 문화재자료 제12호) 등이 있습니다. 나지막한 학성산에 학성공원이 조성된 것은 공원 안에 있는 추전 김홍조의 비석에서 그 유래를 알 수 있고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2년마다 중구민 화합체육대회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데 2007년도의 모습을 잠시 스케치하여 보았습니다. 사진에 대한 내용은 사진위에 글로 적어두었으니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우정동대표 줄넘기 행사중.줄넘기, 피구, 노래자랑대회와 친목행사-중구민의 화합을 위한 행사로 2년 주기로 실시하고 있다. 중간 해에는 각 동민 행사

   우정동 통장,부녀회장님
  우리동 26.7통,그리고 부녀회장님

울산광역시박맹우 시장님(7번째의 만남)

울산중구의 문화재 동헌
   동헌(東軒)은 울산 중구 북정동 349에 소재하고 있는데 조선시대에 고을의 원(員)이나 감사(監司), 병사(兵使), 수사(水使) 그 밖의 수령(守令)들이 공무를 집행하던 곳입니다. 이 동헌은 울산도호부의 것으로서 숙종 7년(1681)에 부사(附使) 김수오(金粹五)가 건립하였고, 정면6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이다. 내아(內衙)는 지방관청의 안채를 이르는 말입니다. 숙종 7년(1681)에 부사 김수오 (金粹五)가 세운 것을 숙종 21년(1695)에 그의 아들 김호(金灝)가 다시 부사의 자 리를 이어옴에 지난 일을 생각하여 편액(篇額)을 일학헌(一鶴軒)이라 하였습니다. 영조 39년(1763) 9월9일에 기둥을 세우고 이어 18일에 상량한 중건이 있었는데 이 는 부사 홍익대(洪益大)가 하였고 현판을 반학헌(伴鶴軒)이라 고쳐 걸었습니다. 또 정 조 11년(1787) 9월 9일에 부사 유한위(兪漢緯)가 다시 중건하였다. 이 동헌은 일제시대 때 이래 울산군의 회의실로 사용하다가 군이 옥동으로 옮겨간 뒤에는 울산시가 이 자리에 작은 도시공원을 만들면서 동헌과 내아를 또한 중건하 여 1981년 12월 22일에 공사를 준공하였습니다. 울산도호부 아문(衙門)에는 동헌과 내아 이외에도, 학성관(鶴城館一客舍) 이작당 (二釣堂) 공사문(公事門) 안안당 가학루(駕鶴樓) 향사당(鄕射堂) 양사재(養士齋) 군관청(軍官廳) 양무당(養武堂) 기고당(旗鼓堂)주진당(主鎭堂) 아병당(牙兵堂) 선 무당(選武堂) 토포청(討捕廳) 훈도청(訓導廳)도총소(都摠所) 부사(府司) 작청(作 廳) 형리청(刑吏廳) 예리청(禮吏廳) 병색청(兵色廳) 공방(工房) 관청(官廳) 호적 소(戶籍所) 상정소(詳定所) 약방(藥房) 통인방(通引房) 소리청(所吏廳) 관노방(官 奴房) 사령방(使令房) 오송정(五松亭) 등이 있었습니다.

  동헌과 내아 이외에, 지금 남은 건물은 동헌과 내아 오송정 뿐입니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지붕에 겹처마이기도 합니다. 또, 내아는 정면 8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이며 또 오송정(五松亭)도 동헌과 같이 복원하였습니다. (국가 지방 유형문화재 제1호)

 

  중구는 본래 울산군 울산면·하상면·동면에 속해 있다가 1962년 시 승격과 함께 울산시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985년 울산시에 구제가 실시되면서 태화강 북부지역이 중구로 되었으며, 1988년 방어진출장소가 구로 승격, 동구로 분리되었습니다. 그후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울산군이 울산시로 합쳐졌으며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남구·동구·북구·울주군과 함께 지방자치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4개 동을 관할합니다. 지형적으로 동으로는 무룡산·임포산, 북으로는 입화산(立火山 137m)의 산지로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남으로 열린 지형을 이루며. 태화강이 상류에서 구조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주변 소지류와 합쳐 동류하여 중구의 남단을 흐르면서, 형산강구조곡을 따라 구의 중앙부를 북에서 남으로 남류하는 동천과 합류하고, 구의 동부에서 연암천·진장천과 합류하며 울산만에 유입합니다. 이들 하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울산평야는 비옥한 농경지로 침강해안의 만입부에 이루어진 충적평야이며 시청이 남구로 옮겨가면서 상권이 남구로 많이 넘어간 상태이지만 최근 들어 문화·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총농가수 754가구, 총경지면적 453㏊로 밭농사 173㏊, 논농사 236㏊, 과수농사 44㏊이고. 5인 이상 총사업체는 제조업체 87개소, 도소매업체 320개소, 숙박·음식업체 132개소, 금융보험업체 94개소, 사업서비스업체 87개소, 교육서비스업체 138개소 등이 있습니다.
  특히 학성동 가구거리는 1980년대부터 형성되어 1990년대 들어 각종 가구점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들면서 가구타운을 형성해 울산지역 최대의 가구 거리로 인정받고 있고, 성남동 로데오거리는 울산에서 유일하게 차가 없는 거리로 상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중구의 관광로서는 울산교는 울산의 중구와 남구를 잇는 다리로 태화강 위에 걸려 있습니다. 일제시대 세워진 이 다리는 본디 자동차가 통과했으나 수명이 다 되어 1990년도 초부터 자동차 통행을 금하고 사람들만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울산시는 당시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철재로 다리 난간을 만들고 다리 위의 등도 아름다운 쌍등을 설치해 울산의 명소가 되었답니다. 또한 삼성정밀화학 사택단지에는 수령 30∼40년 된 벚나무 수백 그루가 있어 봄이 되면 주민들은 물론 멀리서 벚꽃놀이를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 울산시내 태화강가 나지막한 학성산에 학성공원이 조성된 것은 공원 안에 있는 추전 김홍조의 비석에서 그 유래를 알 수 있는데 그는 구한말 울산의 학교·산업·언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로, 1923년 이곳의 개인소유지 7천여 평을 사들여 흑송·벚꽃·매화 등으로 공원을 만들어 당시 울산면에 기증하면서 오늘날의 학성공원이 만들어진 것이라고합니다. 공원내에는 보물 제441호인 태화사지12지상부도와 봄편지 노래비, 충혼비와 울산왜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리대밭은 태화강 상류에 길이 약 4Km 폭 20~30m로 펼쳐져 있는 이 십리대밭은 울산 12경의 하나인 십리대밭입니다. 태화강과 삼호교사이에 있는데 이 십리대밭은 일제시대때 물이 넘쳐 상류가 백사장으로 되었을 때 대비하여 주민들이 대비한 곳이라고 합니다. 대밭과 강사이에는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어있고, 태화강의 잔잔한 수면,,도심속의 울창한 대밭숲을 걸으면 가슴이 시원하고 마음이 탁 트입니다. 한번 가 보세요....현재는 고수부지와 생태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가고 있으며 특히 오산교, 남구와 중구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만들고 있으며 현재(2007년) 울산교직원 마라톤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저로서 십리대밭에서 우리 회원들 7~8명과 다운동 척과교를 왕복(약 10Km거리)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혹 시간이 나시면 매주 금요일 오후 6시20분(십리대밭 오솔길은 우레탄으로 잘 포장되어 있어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음)에 나오시면 함께 즐달하실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항상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인생에서 항상 갖고 있어야 하는 것--希望희망(Hope)   平和평화(Peace)  正直정직(Honesty)
   인생에서 가장 高貴(고귀)한 것
--사랑(Love)    親舊친구(Friend)    自信感자신감(Self Confidence)
   인생에서 가장 確實(확실)하지 않는 것
--成功성공(Succes)    꿈(Dream)    幸運행운(Fortune)
   인생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위한 것
--誠實성실(Sincerity)   努力노력(Hard work)   熱情열정(Compassion)
   인생에서 破壞(파괴) 하는 것
--自尊心자존심(Pride)  慾心욕심(Greed)  禍화(Anger)   길떠나는인생

 내가 즐겨찾는 국수봉
 
~치술령소개. 이곳에는 박제상 부인이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부인의 넋이 새가 되어 찾아 들었다는 은을암, 박제상을 기리는 박제상 유적지 등이있는데 지도에서는 왼쪽의 윗편입니다.
 산행을하려면 척과의 반용마을 회관앞에서 버스로 내려 걸어서 화엄사로 가는 코스가 제일 무난하나 지금껏 소개된 곳은 ‘울산시 범서면 은편리 율림마을회관~재실(종모재)~임도~십자로 사거리~국수봉 전망대~국수봉(600m)~이정표~철탑~전망대~헬기장~치술령(765m)~경주 망부석~울산 망부석~법왕사~옷밭마을~박제상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전체 산행시간은 4시간 30분가량이 소요되나 척과반용에서 걸으면 3시간이면 가능할 것입니다. 화엄사 계속에서 약 30분 가량 오르면 국수봉 정상이 나옵니다.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북쪽으로 가면 은을암이 나옵니다. 진행 방향으로 보면 왼쪽길.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은 듯 매끈한 흙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10여m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은 은을암, 왼쪽으로 10여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임도를 만난다. 이정표에는 ‘두동 만화 1.8㎞’를 가리킵니다. 왼쪽으로 내려 10여m 가면 오른쪽 길섶으로 샛길이 보이는데. 임도를 버리고 이쪽 길로 접어들면서. 능선길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20여분 뒤 사거리에서 중간의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갈래길에서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30분 정도 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직진해 10분만 오르면 치술령이지요. 이 치술령 정상에는 신모사지(神母祠址) 비석이 있다. 박제상의 아내를 기리는 비석이기도 합니다. 지역 사람들은 김씨 부인을 풍요를 기원하는 어머니신(神母)으로 모시고 있습니다.경주쪽 망부석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비석을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5~6발자국 되지 않아 좁은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이를 따라 30여m 내려가면 탁 트인 바위 전망대가 나옵니다. 이곳이 경주 망부석입니다. 변색된 철제 안내판만이 홀로 전망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조용한 주말에 한번쯤 찾아 봄 즉한 곳이기도 합니다

    국수봉(600m)은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국수봉(國讐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청산회"에서 세운 정상표석엔 國守峰으로 표기되어 나라를 지키는 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범서읍지에 따르면 국수봉은 원래 한자로 國讐峰으로 표기했다고 하며 인근의 산들이 모두 신라 서라벌을 향해 경의를 표 하는 자세인데 반해 유독   이 국수봉인 이 산만이 등을 돌리고 앉은 형국이라 하여 원수 수(讐)자를 섰다고 합니다.
 정상은 조망이 없으므로 정상 직전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치술령은 올라온 방향에서 직진하면 됩니다.

  
옥녀봉와 뒤쪽의 국수봉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憂유허지遺墟地가는 가끔씩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길촌길로 가는 코스에 있습니다 (울산광역시기념물12호: 유곡동639번지) 집에서 나와 태화동-유곡동-함월고들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나는 이 곳을 지나 성안으로 풍안마을로 달려 다시 울산광역시교육청쪽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최제우(1824~1864)는 외세의 침략과 봉건사회의 모순을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東學의 교조敎祖로 .경주출신으로 집안살림이 어려워 장사를 하거나 의술醫術에 관심을 보였고,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합니다. 그러나 참된 도를 구하려는 水雲의 노력은 양산,울산,경주지방에서의 수련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860년 4월5일 종교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듬해 포교를 시작하여 1863년에는 경상도,전라도 뿐만아니라 충청도,경기도에서 교세를 펼쳐, 교인 3000여명,지방 종교조직인 접소接所 13개소를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1864년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울산은 부인 박씨의 고향으로 수운은 이곳 여시바윗골에 초가집을 짓고 수련을 계속하던 중 1855년에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천도교에서는 '을묘천서乙卯天書'라고 부릅니다.
    현재 이 곳에서는 1997년에 천도교에서 세운 '천도교 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 유허비 天道敎 敎祖 大神師 水雲 崔濟憂 遺墟碑와 1999년에 세운 비각碑閣이 있습니다.
  가끔씩 초가와 황토로 복원하여 지은 집을 보노라면 수운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지금과 비교하면서 나도 그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에 들어가 버리는 이상한 감흥에 빠지곤 합니다

Today is And Since 2001.01.01 , ''정현철세계여행'open일로 부터 일째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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